서민식육식당의 하루는 점심에서 시작된다.
정오 무렵, 햇빛이 식당 유리창을 일정한 각도로 통과하면 정육 코너에 놓인 고기들이 더욱 선명한 색을 띤다. 고깃집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밥집에 가까운 공기가 흐른다. 바쁜 직장인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고, 단골들은 말없이 메뉴를 주문한다. 분주하지만 어지럽지 않은 시간이다.육회비빔밥은 점심의 대표 메뉴다.
고추장과 참기름이 섞인 붉은빛 아래에서 육회의 차가운 윤기가 반짝였다. 가볍게 비벼 한입 넣으면 차가운 식감이 먼저 와 닿고, 뒤이어 고소함과 은근한 단맛이 퍼졌다. 부담스럽지 않은 점심으로 제격이었다.
불고기정식은 단정한 달큰함이 특징이었고, 오래도록 따뜻함이 유지되는 돌그릇 덕분에 마지막 숟가락까지 흔들림 없는 맛을 보여줬다. 곰탕은 소고기의 깊은 맛이 담긴 흰 국물이 은근하게 몸을 데웠고, 식사 전후의 긴장감을 조용히 풀어주는 느낌이었다.점심 식사를 마치고 문을 나설 때면, 가벼운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점심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단정하고 다부졌으며, 허기를 채운 뒤에도 마음 한구석이 반듯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해가 기울 무렵, 같은 식당은 전혀 다른 얼굴로 변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숯불의 열기와 고기의 향이 먼저 밀려온다. 정육 코너의 선홍빛은 여전히 생생했지만, 이번에는 저녁의 걸음을 향해 있었다. 오래된 친구들과 약속한 자리였다. 세월 동안 굵어진 사연들이 농담처럼 오갔고, 그러나 웃음 아래에 묻힌 어떤 아쉬움은 누구도 모르는 척 넘겼다.삼겹살 한 접시가 등장하자 분위기가 자연스레 풀렸다.
도톰한 고기가 숯불에 닿는 순간, 치익 소리가 튀어 올랐다. 열기 위로 피어오르는 진한 고기 향이 식당 공기를 가득 채웠다. 숯불은 늘 그렇듯 시간을 들여 맛을 만든다. 겉면은 바삭하게 굳어갔고, 속에는 육즙이 오롯이 머물러 있었다.
잘 익은 삼겹살을 깻잎 위에 올리고 새콤한 파절임을 곁들이니, 고기의 뜨거움이 입 안에서 일렁였다. 숯불에서만 날 수 있는 향이 느껴졌다. 여기에 소맥 한 모금이 더해지자 오래전 청춘의 냄새까지 함께 올라오는 듯했다.육회 역시 저녁의 인기 메뉴다.
차갑고 부드러운 질감, 너무 달지 않은 양념, 신선함이 그대로 살아 있는 붉은빛.
한입 넣자마자 혀가 살짝 떨렸다. 점심의 단정한 육회비빔밥과는 다른, ‘저녁의 서늘함과 고요함’을 품은 맛이었다.식사가 무르익을 즈음, 테이블 위에는 된장찌개와 냉면이 함께 올랐다. 된장은 고기의 향을 부드럽게 정리해주었고, 얼음이 동동 뜬 냉면은 그날의 열기를 차분하게 식혀줬다. 숯불의 강한 향과 고기의 묵직함이 한 그릇의 차가운 면발에 봉합되는 순간이었다.식당 밖으로 나오니 공기는 제법 차가웠고, 밤의 바람에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섞여 있었다.
점심엔 단정함이, 저녁엔 열기가 있었다. 그리고 두 시간 사이에 흐르는 무언가—늘 있는 줄 알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하는 그런 감정이 있었다.서민식육식당의 하루는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장면을 품고 있었다.
한쪽에는 부지런한 점심의 정갈함이, 다른 한쪽에는 저녁 숯불의 깊은 열기가.
우리는 그 사이에서 하루를 버티고, 또 살아간다.그리고 어느 시간이든, 따뜻한 한 끼와 함께했던 순간들은 오래도록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다.
점심의 단정함도, 저녁의 격렬함도 모두.주소 : 경북 예천군 호명읍 양지3길 21, 1층전화 : 054-655-4994
경북 예천군 호명읍 양지3길 21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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